2008. 5. 28. 18:14ㆍ카테고리 없음
“우리처럼 멋진 미혼녀들은 많지만, 왜 멋진 미혼남은 하나도 없을까?”라는 대사는 <섹스&시티>의 1시즌, 첫 번째 에피소드에 등장한다. 이 대사는 상징적이다. 이것이 바로 <섹스&시티>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멋진 미혼녀들 중에서 가장 돋보인 것은 바로 캐리였다. 자기 얼굴이 등장한 광고를 붙인 버스가 뉴욕을 순환하는 여자, 세상의 모든 구두를 가지고 싶은 여자, 하지만 남자는 오로지 하나만 가지고 싶었던 여자, 섹스와 관계를 별개의 것으로 분리할 수 없는 여자, 그래서 자신이 사랑한 남자의 수만큼 상처를 받은 여자, 그럼에도 매번 사랑에 빠지고 실수를 하면서 어설픈 관계의 빈약한 속임수에 넘어가는 여자. 그래서 그녀는 그 멋진 미혼녀들 중에서 가장 멋진 여자가 아니라 그들 중에서 가장 현실감을 가진 여자였고, 때문에 그렇게 오랫동안 많은 여성들의 지지를 얻을 수 있었다. 그런데 이 글은 캐리가 아니라 사라 제시카 파커에 대한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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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 제시카 파커는 '캐리'라는 캐릭터 하나로 단번에 동시대의 가장 유명한 셀러브리티가 되었다. 1997년에 결혼한 매튜 브로데릭과 잘 살고 있는 그녀는 실제로 캐리처럼 구두에 대한 집착이 강하다고 알려졌다. 영화보다 연극 무대에서 더 호평을 받은 사라 제시카 파커는 <섹스&시티>의 캐리를 연기한 1999년 이후 동시대 여성들을 대변하는 배우가 되었고 이 작품의 성공 덕분에 사라 제시카 파커는 자신의 의류 브랜드 비튼(Bitten)과 향수 러블리(Lovely), 코벳(Covet) 등을 론칭할 수 있었다. 게다가 그녀는 <섹스&시티>의 총 제작을 맡은 제작자이기도 하다. 그녀가 1년에 벌어들이는 돈은 약 380억 원 정도지만, 그녀는 번만큼 쓰기도 한다. 유니세프 활동에 적극적인 후원을 아끼지 않는 배우이며, 민주당 지지자로 할리우드에서 가장 정치적인 배우 중 하나이기도 하다. 그런 그녀가 무슨 말을 하고, 어디에서 쇼핑을 하고, 무슨 옷을 입었으며 어떤 구두를 신었는지가 화제가 된다. 사람들에게 이미 사라 제시카 파커는 캐리 그 자체였다. 한 명의 배우가 단 한 작품으로 이렇게까지 성공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 물론 그녀에게 어마어마한 성공을 가져다 준 작품이지만 <섹스&시티>의 캐리는 사라 제시카 파커의 발목을 잡는 딜레마이기도 하다. 이 작품을 제외하면 그나마 배우로서의 경력도 희미해질 정도다.
배우로서 사라 제시카 파커의 경력은 캐빈 베이컨 주연의 1984년 영화 <풋 루스>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후 그저 그런 영화에 출연하며 80년대를 보낸 그녀는 1993년 브루스 윌리스와 출연한 <스트라이킹 디스턴스>로 대중의 주목을 받았지만, <호커스 포커스>와 <에드우드>, <조강지처 클럽>과 <화성침공> 같은 영화에 출연하는 것 이상으로 큰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그런데 연극무대에서 호평을 받은 것과는 달리 영화에서 그리 큰 성과를 내지 못한 사라 제시카 파커를 가까스로 구원한 것은 1998년에 방영된 <섹스&시티>였다. 그녀는 캐리가 되었고 마침내 스타를 넘어 한 시대의 아이콘이 되었다. 그런데 캐리의 이미지가 너무 강했던 나머지 그녀의 존재감은 <섹스&시티> 이전과 이후에 있어서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섹스&시티> 이후 사라 제시카 파커는 까무러칠 정도로 유명해졌지만 배우로서 그녀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섹스&시티>의 캐리의 이미지를 답습하는 게 전부였다. 2005년 <우리 사랑해도 되나요>와 2006년 <달콤한 백수와 사랑 만들기>, 2008년 <스마트 피플>같은 로맨틱 코미디 영화에 대한 평가가 단적으로 엇갈리는 것도 그 때문이다.
가장 잘 어울리는 자리, 가장 위태로운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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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사라 제시카 파커가 영화로 만들어진 <섹스 앤 더 시티>의 포스터에 있다는 사실은 왠지 모를 안정감을 준다. 그곳이 그녀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자리다. 지난 6년 동안 영화와 관련된 온갖 억측과 루머와 위기가 무색하게 영화 <섹스 앤 더 시티>와 사라 제시카 파커는 여전히 화제의 중심에 자리 잡고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영화에서도 캐리는 여전히 똑똑하고 어설프면서도 위트가 넘치고 긍정적이다. 사람들은 여전한 캐리를 보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바로 이 영화에 대한 높은 기대와 반응이다. TV시리즈에서 못다한 이야기를 영화는 어떻게 담을 것인가. 캐리는 미스터 빅과 무사히 결혼하게 될 것인가. 결혼이 과연 사랑의 끝이 될 수 있을까. 캐리가 입을 드레스는 얼마나 예쁠까. <섹스 앤 더 시티>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캐리에 대한 것 뿐이다. <섹스 앤 더 시티>가 곧 캐리이고, 캐리가 곧 사라 제시카 파커다. 이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6개의 시즌이 방영되는 동안 <섹스&시티>의 시청자들은 캐리가 만나는 남자를 의심하고, 그녀의 고민을 공유하고, 그녀의 도전을 응원했으며 그녀가 말하는 모든 것을 실존 인물의 그것처럼 받아들였다. 사라 제시카 파커는 가장 완벽한 캐리를 만들었고 사람들은 그녀와 함께 웃고 울고 열받으면서 섹스와 관계와 남자에 대해 예습과 복습을 할 수 있었다. 과연, 이토록 강렬한 이미지가 배우에게 얼마나 치명적인가에 대해서는 두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솔직히 그게 무슨 상관일까. 한 캐릭터의 이미지가 그토록 강렬하게 발목을 잡고 있어도, 사라 제시카 파커가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여배우이자 전 세계의 20대 여성들로부터 변함없는 지지를 받고 있는 아이콘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그 어떤 배우도 누리지 못한 호사다. 그래서 캐리라는 캐릭터의 무게가 만만치 않더라도 그녀는 그 중량을 오롯이 감당한 채 다음 스텝을 밟아야 할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한 시대를 정의한 ‘아이콘’의 중량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침내 영화 <섹스 앤 더 시티>가 그 다음 스텝에 대한 전환점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영화 이후 그녀는 어디로 갈까. 그녀는 캐리가 아닌 배우로서 기억될 수 있을까. 모든 궁금증은 영화 개봉 이후에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출처원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