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6. 3. 09:32ㆍ디자인
우연히 접하게 된 너무나 아름다운 눈이 즐거워지는 일러스트들입니다.
자포니즘, 아르누보, 일러스트레이션의 황금시대의 그림과 함께, 이 시대 일러스트레이션의 동양적 아름다움을 감상해보세요. ^0^
카이 닐센의 [춤추는 열두 공주] 일러스트레이션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사이에는, 유럽 중산층 가정의 커피 테이블마다 가죽장정에 금박으로 제목이 박힌 멋진 책들이 놓여있기 마련이었다. 그리고 그런 책들에는 섬세하고도 깔끔한 펜선에 선명한 색채를 빛내는 삽화들이 가득 들어있었고 말이다.
이 시대는 인쇄물의 전성시대였다. 인쇄기술은 발달하고 인쇄물을 대신할 매체는 아직 등장하지 않아서 책과 잡지가 쏟아져 나오고 있었고, 또 기술 발달로 그런 인쇄물에 색채가 풍부한 도판을 넣는 것이 예전처럼 어렵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한편으로 일본 우키요에 목판화가 유럽 화가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어 자포니즘 Japonism 열풍을 일으키면서, 유럽 화가들도 뚜렷한 윤곽선에 색채 대비가 강렬한 평면적인 그림을 시도하고 있었다. 이런 그림들은 대량인쇄와 잘 맞아떨어졌고, 그래서 이른바 일러스트레이션의 황금시대 the Golden Age of Illustration 가 열리게 된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 시대는 그렇게 오래 가지는 못했다. 20세기 들어 세계대전이 연이어 일어나면서 화려한 일러스트레이션이 가득한 책은 지나친 사치가 되었고, 또 라디오, 영화 등 새로운 매체가 발달하면서 사람들이 예전처럼 인쇄물에 돈을 쓰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러스트레이션의 황금시대는 보통 1880년부터 1920년까지 약 40년간으로 잡는데, 당연한 얘기지만 이 시대에는 탁월한 일러스트레이터가 참 많이 나왔다. 그중에서도 3대 아동도서 일러스트레이터로 손꼽히는 사람들이 영국의 아서 래컴, 프랑스의 에드몽 뒬락, 덴마크의 카이 닐센이다. 사실 아동도서 일러스트레이터라지만 그들은 성인을 위한 삽화도 많이 그렸고, 그들의 그림은 아동 취향이라기에는 너무 미묘하고 우아하며 때로는 관능적이다. 그리고 이들의 그림에는 동양미술, 특히 일본미술의 영향이 강하게 나타난다.
카이 닐센의 [해의 동쪽 달의 서쪽] 일러스트레이션
북유럽 전래동화 [해의 동쪽 달의 서쪽] (동화 내용을 보려면 여기 http://blog.daum.net/isis177/467257 를 클릭) 을 위한 카이 닐센의 삽화에는 우키요에의 영향이 직접적으로 나타난다. 특히 북풍을 의인화한 위의 그림을 보면 북풍이 스모 선수 같은 복장을 하고 있는 데다가(!), 파도의 표현이 호쿠사이에 대한 오마쥬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카나가와의 거대한 파도 (후지산 36경 중)
카츠시카 호쿠사이葛飾北齋 (1760-1846) 작
카이 닐센의 [해의 동쪽 달의 서쪽] 일러스트레이션
카이 닐센 Kay Nielsen (덴마크, 1886~1957)
3대 일러스트레이터 중 가장 늦게 태어난 닐센은 1913년 [파우더와 크리놀린 In Powder and Crinoline (유럽 전래동화를 영국 작가 Q경이 새롭게 쓴 것)]의 삽화로 명성을 얻게 되었고, 그밖에 대표작으로 [해의 동쪽 달의 서쪽 (1914)], [헨젤과 그레텔, 그리고 다른 그림동화 (1925)] 등이 있다. 1930년대에는 월트 디즈니의 [판타지아 Fantasia(1940)] 제작팀에 참여하기도 했는데, 맨마지막 [민둥산의 하룻밤] 단편 (악마가 유령들을 불러모아 난장을 벌이는 아주 강렬한 단편이다)이 그가 디자인한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곧 디즈니와 결별하고 나중에는 빈곤 속에서 세상을 떠났다니 참 안타까운 얘기다...나는 개인적으로 3대 일러스트레이터 중에서 닐센을 가장 좋아한다. 그의 그림은 거의 신경질적일 정도로 예리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고 극도로 우아하다.
카이 닐센의 [춤추는 열두 공주] 일러스트레이션
카이 닐센의 [춤추는 열두 공주] 일러스트레이션
닐센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그보다 15년 앞서 태어난 전설적인 아르누보 일러스트레이터 오브리 비어즐리 Aubrey Beardsley (1872~1898) 의 영향도 느껴진다. 비어즐리만큼 병적이고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는 아니지만... 그리고 닐센의 그림은 에르테 같은 그 시대 패션 디자이너의 일러스트레이션과 일맥상통하는 데가 있어서, 패션 일러스트레이션을 했어도 좋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했는지도 모른다)
비어즐리의 [살로메] 일러스트레이션
에드몽 뒬락 Edmund Dulac (프랑스, 1882~1953)
내가 보기에는, 3대 일러스트레이터 중에서 뒬락의 작품이 가장 그림체와 분위기가 다양하고 또 무난한 편이다. 나쁘게 말하자면 카이 닐센이나 아서 래컴에 비해서 강렬한 개성이 적다는 것이고, 좋게 말하자면 가장 포괄적이며 또 광범위하게 어필할 수 있다는 말이다. 대표작에는 [아라비안 나이트(1907)], [잠자는 미녀와 그외 동화(1910)], [안데르센 동화 (1911)], [바두라 공주(1913)] 등이 있는데, 그의 신데렐라 삽화와 인어공주 삽화도 유명하지만...
무엇보다도 동양을 배경으로 한 동화의 삽화들에서 뒬락의 진가가 나타난다.
아래 세 개의 그림은 천일야화에서 중국 공주가 등장하는 에피소드를 새롭게 쓴 동화 [바두라 공주 Princess Badoura]의 삽화인데 정말 아름답다.
그리고 아래에는 어느 작품을 위한 삽화인지 모를 중국풍과 일본풍의 그림이 있다. 비파를 든 중국 귀부인에게 편지를 전하는 봉황의 모습이나, 헤이안 시대의 특이한 눈썹을 한 일본 여인을 보면... 뒬락이 얼마나 세심하게 동방의 미술품을 연구하고 이 일러스트레이션을 제작했는지 알 수 있다. 이렇게 유럽작가의 손으로 재탄생한 동양의 아름다움은 또다른 매력을 지니게 된다.
아서 래컴 Arthur Rackham (영국, 1867~1939)
3대 일러스트레이터 중 가장 먼저 태어났으며 아마도 가장 널리 알려진 일러스트레이터일 래컴은 특유의 가라앉은 색조로 유명하다. 성인용 책인 [반지 The Ring (바그너의 오페라 니벨룽의 반지를 책으로 낸 것)(1910~11)] 같은 경우에는 초지일관 우울한 황갈색 색조가 유지되고 있고,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1907)] 같은 동화에는 좀더 많은 색채가 들어갔지만 그래도 여전히 절제되어 있다. 그밖에 대표작으로는 [그림 형제 동화(1900)], [켄싱턴 공원의 피터 팬(1906)], [운디네(1909)] 등이 있다.
래컴이 동화를 "어둡고 관능적으로" 표현한 것에 반한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은 그의 영화 [판의 미로(2006)](우리나라에서 어린이용 판타지로 잘못 소개돼서 외면받은 비운의 수작이다...)에서 래컴의 그림을 참고해서 비주얼 작업을 했다고 한다.
카이 닐센이나 에드몽 뒬락에 비해서 래컴의 그림에는 동양미술의 영향이 강하게 나타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의 아래 요정 그림들을 보면 나뭇가지에 앉은 새들에서 동양의 화조도가 연상되고 또 식물 사이의 텅 빈 하늘에서 동양화의 여백의 분위기가 느껴진다.
그리고 [운디네] 삽화의 파도의 묘사에서는 역시 우키요에의 영향이 나타난다... (운디네의 줄거리를 보려면 여기 http://100.naver.com/100.nhn?docid=746670 를 클릭)
래컴의 [운디네] 일러스트레이션
여러분은 어느 일러스트레이터가 가장 마음에 드시나요? ^^
참고로 이 포스트는 네이버 블로거 '무우운'님께서'문의 미술관 속 비밀도서관'블로그에 포스트 한 글을 스크랩해온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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